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2-02-03 09: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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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신(scene)’이 있습니다. 코로나 최전선 의료진의 영웅신, 발코니로 떠나는 우리가족 여행신, (…) 이제 모두가 기다려 온 백신으로 해피엔딩 신을 보여줄 차례. 우리가 함께 만든 최고의 신들이 있어 대한민국은 반드시 코로나19를 이겨낼 것입니다.”
공익광고협의회의 광고문이다. 참 멋지다. 그런데 나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에게 ‘발코니’가 있기라도 한가?
대개의 사람들은 데크(Deck), 베란다(Veranda), 테라스(Terrace), 캐노피(Canopy)가 모두 발코니(Balcony)인 줄 안다. 데크는 ‘판재를 깔아 놓은 장소’를 이른다. 발코니는 ‘침실 또는 거실의 벽에서 돌출되어 외부에 노출된 공간이다. 위층의 발코니 바닥이 아래층 지붕이 되는곳’을 말한다.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죄다 베란다라고 한다.
허드레 물건이나 내다 놓는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발코니가 지친 영혼의 안식처로 거듭났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공동주택 발코니, ‘아브라치아미(Abbracciami·안아주세요)’ 팝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선율이 퍼져나간다. 모두들 발코니로 얼굴을 내민다. 어느새 떼창으로 화답한다. 선율에 지친 영혼들이 일어선다. 기막힌 연대(solidarity)다. 인간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해 낼 것인가? 참 멋진 세상이다.
로마에 사는 한 부부는 발코니에 ‘안드라 투토 베네’(다 잘 될 거야)라는 글귀를 적은 국기를 내 걸었다. 공연무대가 어느새 객석으로 둔갑한 모습 또한 걸작이다. 코로나가 가져다 준 발코니의 재발견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배불리 먹고 좋은 집을 짓고 재산이 늘어나’(신 8:12~14)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염려한다. 그래서 초막절이 되면 안락한 집을 떠난다. 초막을 짓고 밖에서 지낸다. 초막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도시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초막을 짓기가 어려워진다. 이번에는 발코니에 텐트를 친다. 발코니가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나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의 공간이 된다.
그런데 어쩌자고 한국의 아파트는 죄다 발코니를 뜯어 없애버린 것일까? 평수에 포함되지 않는 발코니보다 평수 넓은 거실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어서일까?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가장 기막혀 하는 장면이다. 마치 폐 기능을 상실한 환자만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도 자그마한 발코니가 있다. 하지만 쓰지를 않으니 그 역시 죽은 공간이었다. 고민 끝에 작은 탁자 하나를 갖다 놓았다. 코너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했다. 여러 버전의 캐롤을 준비했다. 기분이 꿀꿀 할 때, 답답함에 속이 화끈 거릴 때, 누군가가 보고플 때... 불을 켜고 캐롤을 튼다. 365일이 성탄절이 된다.
드디어 ‘발코니로 떠나는 행복신’이 완성된 셈이다. 춤꾼인 아내는 이곳에서 춤도 춘다. 나는 찻잔을 들고 이곳에 앉아 묵상을 하다 햇살의 유혹에 빠져 꾸벅 꾸벅 졸기도 한다.
행복신, 꾸며볼 만 하지 않은가?

※ 이곳에 손녀 은유의 탄생을 축하하는 배너도 달아볼 작정이다. 마지막 사진은 매직 타임에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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