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1-11-27 09: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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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고 다 여행이 아니다. 관광을 의미하는 ‘trip’ 있고 걸어서 둘러보는 ‘tour’도 있다. ‘journey’는 멀리 가는 여행을 말한다. 풍경도 그렇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하라 사막, 기괴(奇怪)한 모양의 협곡으로 이어지는 그랜드 캐년, 일만 이천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금강산... 자연풍경이다. 불가사의로 손꼽히는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콜로세움, 중국의 만리장성은 인공풍경이다. 감탄을 자아내는 자연풍경과 인공풍경은 눈앞에 있을 때 기억된다. 그리고는 이내 잊혀지기 쉽다. 그런데 정작 지워지지 않는 풍경이 있다.

사람이 빚어내는 삶의 풍경이다. 철학자 아도르노는 이를 ‘문화풍경(Kulturlandschaft)’라 했다. 어제 앰뷸런스 소원재단은 세 번째 소원나들이를 떠났다. 자신의 나이를 100살이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할머니를 모시고 커피나들이를 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잠들 때도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잠든다고 했다. 밤중에 혈압이 떨어지며 까딱하면 떠나보낼 뻔 한 기억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둘은 깊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만 같았다.
가끔 들린다는 VIVA 카페를 찾았다. 할머니는 커피를 무척 좋아하셨고 맛을 감별하기도 했다. 아들의 요청으로 ‘짜짜짜 우스스 하하하’ 구호로 우리의 웃음을 유도하셨다. 그 미소가 천사의 미소였다. 아들의 코를 잡아 비틀기도 하고 ‘까불지 마’하고 경고를 주시기도 했다가 ‘네’하고 아들에게 존댓말로 반응하시기도 했다. 영락없는 연인사이였다. 아들을 남편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둘의 모습을 보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이럴 때를 위해 주어진 언어가 ‘누멘’이었다.
배철현 교수는 ‘장엄’은 신(神)의 특징이며 신적인 삶을 갈망하는 인간의 삶의 태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장엄의 라틴어, ‘누멘(numen)’을 이렇게 풀이한다.
“누멘은 지상에서 순간의 삶을 사는 인간이 신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습득해야한 개성이다. ‘누멘’의 원래 의미는 ‘고개를 끄덕이다, 인정하다’는 의미인 ‘누오’(nuo-)와 명사형 어미 –men의 합성어다. (...)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누멘’을 ‘신적인 마음’으로 해석했다. 이 ‘신적인 마음’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신적인 힘’으로 변해,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변화한다. 자신이 열망하는 더 나은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 바로 ‘장엄’이다.”
나는 또 하나 배웠다. 장엄한 자연풍광과 경이로운 인공풍경은 ‘감탄(感歎)’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문화풍경은 ‘감동(感動)’을 요구했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두 주먹을 쥐었다.
※ 봉사라고 떠난 나들이가 우리에게는 관광(觀光)이었다. 관광은 놀고먹는 일이 아니다. 빛을 보는 일, 즉 사물을 보고 깨닫는 것이다.

나이든 모자가 우리의 내일을 비추는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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