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1-09-23 10: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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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집중 호우(豪雨)가 쏟아진다. 땅은 비에 물러진다. 돌로 만든 집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재난이다. 돌 대신 가벼운 목재를 쓴다. 이번에는 썩어 무너진다. 물에 취약한 나무를 돌 위에 세운다. 돌은 주춧돌이 되고 나무는 기둥이 된다. 처마를 길게 뽑는다. 들이 닥치는 비를 막기 위해서다. 더구나 대부분의 돌은 현무암이나 화강암이었다. 다듬어 쓰기 어려웠다. 자연히 집은 높이가 아닌 옆으로 뻗는 수평구조였다. 벼농사 지역의 건축물이 탄생된 배경이다.

밀 농사지역의 길은 상업도로였다. 물물교환이 이루어진다. 훗날 이런 상업·교역도로는 침략과 약탈의 도로로 바뀐다.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성(城)을 쌓는다. 성은 넓이가 아닌 높이였다. 무른 바위는 성을 쌓기에 용이했다. 그래서 그들은 높이를 측량하는 ‘층’이 단위가 되었다. 이와 달리 쌀 농사지역은 ‘층’이 아닌 ‘칸’이었다. 으리으리한 99칸의 저택은 조선말 건축술의 백미(白眉)다. 99칸은 임금을 제외한 양반가옥에서 지을 수 있는 최대 크기였다.
서민들의 서너 칸의 집일지라도 주변에 논과 대나무 숲, 저수지 등이 펼쳐진다. 풍광이 중요했다. 큼지막한 창과 대청마루가 자연을 끌어안는다. 새가 우짖고 바람이 드나든다. 9999칸의 자금성이나 수백 칸의 경복궁에 미치지는 못해도 왕처럼 넉넉한 인심은 길 가는 나그네들에게 언제든 쉴 곳을 내어줬다. 환대(歡待)였다.
환대로 넘치는 집이 천군천사도 노닐다 가는 천국이 아닐까?
집에 대한 내 생각이다.

※ 김동수고택 안 행랑채, 처마에 걸린 보름달의 풍경과 강릉 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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