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1-05-17 11: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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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5월호)의 기고문을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 온 몸이 찌뿌둥하다. 스멀스멀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덮친다. 숨 쉬는 것조차 버겁다. 이러다가 공황장애가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어디로 꼭꼭 숨어버리고 싶다.
“나 일찍이 세상살이 어려움 탄식하여 삼가 내 입을 지켜 허물을 적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를 알아주는 이 찾을 수 없으니 입 다물고 사는 게 차라리 나으리라. 고요히 입 다물고 살기로 했으니 이런저런 시비 논할 필요 없다 여기는데 마음은 굳은돌이 아닌지라 입 다물수록 점점 번민은 가득하고 괴로움은 커져서 울화로 치미니 마음은 불덩이로 변해버리는구나”(시편 39: 1~3a, 오경웅, [시편사색], ‘성서의 민요’격인 시편을 중국 한시처럼 운율을 맞춰 해설했다.)
아, 시편기자도 마음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렸구나. 득실거리는 내 마음의 분노,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 나도 나를 모르겠다. 그 끝이 무엇일까? 하염없이 몸이 무너져 내린다. 몸이 제 마음 알고 먼저 드러눕다니... 몸은 참 정직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누죽걸산’(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이다. 산을 오른다.
호젓한 산 속, 바람이 분다. 심호흡을 한다. 꽃이 나를 반겨준다. 꽃들은 깊은 산 속 아무도 보지 않는데서 피어나던지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피던지 옮겨 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서러워 우는 일도 없다. 잘 보이려 치장하는 일도 없다. 꽃을 보며 나를 부끄러워한다.
바삐 걸을 일이 없다. 안단테(andante)로 걷는다. 그러다 잘 걷지 않는 외길을 만난다. 거기 작은 무덤이 있다. 말 없는 비석이 말을 건넨다.
“Hodie Mich Cras Tibi”(나, 어제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나와 같으리라)
어느새 마음에 일던 풍랑이 잠잠해진다. 불덩이로 변한 마음에 소화전(消火栓)이다. 다시 성경 말씀을 떠올린다.
“이 목숨의 끝이 언제입니까?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 건지요? 주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사 덧없음을 제대로 알게 하소서.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흐릅니까? 길어야 손가락의 마디쯤이지요. 인생이란 야훼 당신 보시기에 사라져 없어지는 숨 한번 아닙니까? 이 모두 꿈속의 그림자 같으니 일순간 나타났다 이내 사라집니다. 세상의 그럴 듯한 일도 끝내 사라지는데 어찌하여 괴로움은 이다지도 긴 건가요? 아무리 부귀영화 누린다 한들 누가 그걸 움켜쥘 수 있겠습니까?”(시편 39: 4~6)
비석과 무덤 앞에서 비로소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 ‘필멸자(必滅者)!’ 나는 시편기자가 그렇게 갈망했던 지혜를 얻는다.
“야훼여 주의 진노 거두어주셔서 저로 하여금 숨 돌리게 하소서. 죽기 전에 저 스스로 새롭게 되어 세월 지내는 지혜 누리게 하소서”(시편 39:13)
오경웅(우징숑 1899~1986)의 [시편사색]이 나에게 <시편산책>이 된다.

 

※ 사진은 산책로에 있는 묘지다. 묵상을 위해 의자를 갖다 두었다. 또 다른 사진은 대릉원의 사진이다. 경주 여행의 백미(白眉)는 ‘능 뷰’(royal tomb view)다. 그런데 몇 사람이나 이것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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