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0-11-19 09:3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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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의

고인이 입는 옷을 수의(壽衣)라 한다. 유족이 입는 것이 상복(喪服)이다. 전통적으로 수의는 비단으로 지어진 옷을 입혀 드렸다. 생전의 관직에 따른 관복을 입히기도 했다. 고인에 대한 존중이었다. 거꾸로 상복은 죄인들이 입었던 삼베옷이었다.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못한 대역죄인(불효자)이란 의미였다.

그런데 지금은 고인에게 죄수복을 입힌다. 유족들은 검정색 양복에 넥타이를 맨다. 격식있는 취임식에 걸맞는 드레스 코드다. 코미디 중에 코미디다.

장의업자들의 마지막 효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는 꼼수 마케팅에 놀아난다. 수 백 만 원짜리 수의를 입힌다. 제작 원가가 수 만원 밖에 하지 않는다.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섬유 혼용률 표시조차 없다. 더구나 화장률이 90%인 상황에서 불과 수십 시간 후에 불에 태워질 옷에 낭비를 한다. 어리석음의 극치다.

하이패밀리는 가장 먼저 평상복 입혀 드리기캠페인을 펼쳤다.

2. 염습

염습(殮襲)의 습()이란 시신을 목욕시키고 일체의 의복을 입히는 것을 의미한다. 소렴은 시신을 옷과 홑이불로 싸서 묶는 것이다. 대렴은 시신을 아주 묶어서 관에 넣는 것을 말한다. 습과 렴을 총칭하여 염습이라 한다.

과거의 장례는 5, 7일 꽤 길었다. 부패한 시신은 산 자를 괴롭혔다. 위생문제도 컸다. 때문에 염습이 필수적이었다. 거기다 매장을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때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서기도 했다. 길은 험했다. 시신이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지금의 장례는 거의 3일을 넘기지 않는다. 산속을 헤집고 갈 일도 없다. 장의차가 안전하게 운행한다. 그런데도 시신을 결박한다.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대부분의 나라는 고인이 숙면(熟眠)을 취한 모습으로 관에 누인다. 이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영면(永眠)의 상태로 떠나보낸다. 우리나라는 미라(mirra)처럼 형체를 볼 수 없게 싸맨다. 국적불명의 폐습이다. 염습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병원장례로 고착되었고 도미노현상처럼 염습쟁이에 의한 장례로 귀착되었다.

지금은 간단한 위생처리와 사후화장만으로 충분하다. 복잡한 염습은 더 이상 필요 없다.

하이패밀리와 청란교회는 무염습 장례를 소개하며 교회내 안치실을 설치했다.

 

​​3. 완장과 굴건

유족이 다는 검은 리본, 완장 등은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에 따른 방식이다. 의례준칙에는 전통상복인 굴건제복을 생략해 두루마기와 두건을 입도록 했다. 왼쪽 가슴에는 나비 모양의 검은 리본을 달게 했다. 양복을 입은 사람의 왼쪽 팔에 검은 완장을 달게 한 것도 이 때다.

목적은 상주, 가족 그리고 문상객을 구분하기 위해 수를 달리한 검은 줄의 완장을 차게 했다. 탄압을 위한 감시수단으로 작동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두 줄, 세 줄짜리로 진화했다. 완벽한 계급사회의 구현이었다.

※ ​하이패밀리와 청란교회는 장례독립선언과 함께 와비(臥碑)에조차 장로·집사·목사의 호칭을 배제한다. 죽음은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다. 직분이 아닌 우리의 본분으로 성도(聖徒)란 호칭만 쓸 것을 주문한다.

 

4. 국화꽃과 조화 전시

우리 전통 장례문화에서 고인을 기리는 만장이나 휘장이 전부였다. 꽃은 보기 어렵다. 입관과 함께 병풍으로 가리면 끝이었다. 고관대작과 서민이 차이가 없었다. 죽음 앞에서 모두 평등했고 검소하고 겸허했다.

일본에서 수입된 잘못된 문화가 장례를 뒤덮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황실의 상징인 국화(菊花) 일색이다. 많은 부분 여전히 우리는 일본의 장례속국이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꽃이나 고인과 관련된 꽃말이 담긴 꽃장식이 훨씬 자연스럽고 의미가 깊다. 망자에게 생명도 향기도 없는 조화(造花)는 바치지 않는다. 심지어 절화(折花)까지도 절제해야 한다고도 한다. 조문객이 직접 골라온 것도 아닌 준비된 꽃을 되돌이표로 주었다 빼앗다 하는 행위가 너무 우습지 않은가?

하이패밀리와 청란교회는 장례의 독립선언과 함께 병풍을 되찾아냈다. 플로리스트(florist)에 의한 추모와 애도의 꽃 장식으로 품격을 높인다.

 

5. 무시기

장례가 엉망이 된 주적(主敵)중의 주적은 바로 나 자신이다. 한 마디로 말해 무지하다. 무지가 무속신앙과 미신을 키우고 가꾼다.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모르는 무식이 가장 큰 무식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무시기라 부른다. 나부터가 무시기였다.

이제는 배워야 한다. 그래야 속지 않는다. “한 번 속으면 속인 놈 잘못이다. 하지만 두 번 속으면 그건 속인 놈이 아닌 속은 놈이 잘못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 “남 속는 것을 뻔히 보면서 따라 속는 놈은 더 나쁘다.”

게으름도 문제다. 닥칠 때까지 기다린다. 미리미리가 없다. 나아가 성급하다. 서두른다. ‘서두름에는 축복이 깃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복을 갈망하면서 눈앞의 복주머리를 차 버리는 꼴이다. 장례는 안단테도 아닌 라르고(Largo). 느리고, 풍성한연주와 같다.

하이패밀리와 메멘토모리 기독시민연대는 <메멘토모리 스쿨>을 통해 죽음교육과 함께 엔딩플래너를 지원해 장례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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