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0-11-18 09: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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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이에게 입히는 옷을 수의라 한다. ‘수의 수()’를 써서 수의(襚衣)라 해야 옳다. 그런데 굳이 목숨 수()’를 써서 壽衣(수의)라 하는 이유는 뭘까?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다음 날에야 수의를 재봉하고 관을 제작했다. 살아있을 적에 하면 재수 없다고 여겨서다.(지금도 숨이 넘어가고 나서야 장지를 찾는 이유다.) 자연히 장례식은 하루가 길어졌다. 이를 고치기 위한 넛지(nudge,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기법)가 있었다. 장수(長壽)를 끌여 들였다.

부모의 수의(壽衣)를 미리 지어드리면 장수효자가 된다

영정사진도 미리 준비하는 법이 없다. 당일이 되서야 허겁지겁이다. 부산을 떤다. 황망한 가운데 차를 몬다. 부주의로 사고를 낸다. 그러다가 진짜 재수(?) 없는 줄초상을 당하기도 한다. 영정(影幀)은 달마선사나 선종 승려들의 초상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후에 사람의 얼굴 모습을 묘사한 그림’ ‘옛 사람의 초상화를 칭하게 되었다. 영정이 사진기술과 결합되면서 영정사진이 되었다. 제사나 장례를 지낼 때 위패 대신 상에 올려놓는 용도로 쓰였다.

서양에서는 사진으로 고인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고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뷰잉(Viewing:고인접견)이라 하다. 그렇다면 왜 영정사진에 검은 띠는 무엇인가? 혼백(魂魄)을 대체한다는 의미다. 죽음의 상징이다. 누군가에게 , 죽고 싶냐?’고 겁박할 때 네 사진에다가 검은 줄 걸치고 싶냐?’고 한다.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해왔기때문이다.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것을 깜깜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장례절차가 그렇다.

죄인을 가르키는 죄수(罪囚)의 수()죄인 수’, ‘가둘 수. 영정까지 검은 띠로 가두어 죄인을 만들 이유가 있는 것일까? 더구나 검은 띠를 두르는 것은 두 번의 죽음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할 근거가 없다. 앞선 넛지기법으로 영정 띠는 사진의 완장이니 거두자고 하면 사라질 것인가? 그리고 왜 사진은 한 장만이어야 하는가? 결혼식처럼 이젤에다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베스트 파이브 인생샷으로 설치할 수 없을까?

이런 질문이 장례 회복을 위한 유쾌한 반란이 된다. 다큐멘터리 감독 이길보라는 예술가란 어떤 존재냐는 질문에 답한다.

질문하는 사람. 지금 굴러가는 정상성이 정말 맞는 건지, 질문하는 사람

장례는 다양한 질문을 품고 있다. 장례는 늘 질문을 받는다. 왜 염습을 하는가? 꼭 수의를 입혀 드려야 하는가? 꼭 국화꽃이어야만 하는가? 왜 완장을 차야 하는가?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의 줄임말)가 웨딩에만 필요한 것인가? 죽음은 슬픔만인가?…… 그 때 죽음은 예술이 된다.

삶의 예술은 죽음을 위한 예술이고

죽음의 예술은 삶의 예술만큼 중요하다.

죽음의 예술은 삶의 예술을 보완해 주고 완성시켜준다.

삶의 예술의 결정판이 곧 죽음의 예술이다.

한 인간의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달려 있다.”-‘티벳 사자의 서평론에서

이제는 내가 내게 물어야 한다.

나의 장례는 어떻게 꾸밀 작정인가?”

장례야 말로 내가 남길 마지막 인생 작품이다.

예쁜 미소와 웃음을 남기고 떠난 김자옥님의 영정은 또 하나의 작은 변화였다. ‘유쾌한 반란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는 영정사진앞의 위패도 거두자. 그리고 영정사진에까지 완장띠를 두르는 것은 멈추자. 근엄한 사진보다 밝고 밝은 사진으로 희망을 주고 떠나자. 나에게 늘 나는 송목사님의 팬이라고 응원해 주시던 자옥누님의 장례를 지켜보며 내린 나의 결론이었다.

(두번째 사진은 고 이건희 회장의 영정모습이다. 마지막 사진은 국외 독립유공자 조종희 나성돈지사의 봉송행렬 모습이다. 일류기업이라고 장례도 일류는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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