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0-09-24 15: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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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왜 그랬는지 말씀이 많이 길었다. 같은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셨다. 나는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아내는 진짜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었다. 맞장구도 치고 잘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입을 뗀다.

, 꼭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았어.” 장모님이 그러셨단다. 어느 날 보니 할 말이 산더미처럼많아지셨더란다. 아침에 주기도문 길에 올라서도 아내는 말했다.

엄마가 이야기하면 나는 딴 생각도 하고 딴 짓을 하며 안 듣는데도 엄마는 다 들었다고 생각하는 거 있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앞에 있고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 것만으로 치유가 되더라니까요.”

오후시간, 아내가 아버지한테 문자가 왔다며 보여준다.

어제 저녁식사도 안 한 중인데 아버지가 긴 시간 잔소리해서 미안하구나. 앞으로는 안 할게!

그런 와중에도 싫증을 내는 기색 없이 열심히 듣고 있는 너 웃는 모습이 아름다워 아버지 기분이 정말 좋았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하더냐’-조용필 가수

아버지 걱정 말고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기 바란다. 가정에 행운과 온 가족 건강하기를 기도한다.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자신의 이야기가 길었다는 것을. 그 날 저녁 아버지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기도 하셨다. 쓰러지셔서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가 안스러웠던 거다. 홀로 지내셔야 하는 밤, 우리의 방문이 아버지에게는 반가웠고 그동안 산더미처럼 쌓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셨던 거다. 평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짧은 카톡 메시지에 조용필의 노래가사를 떠올린다. 나도 모르게 소리친다. ‘아 아부지!’

이번에는 내가 울컥한다. 말미에 적힌 발신자.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다. 더더욱 아버지도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나는 안다. 90 생애의 내 아버지는 당대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페미니스트(feminist)였다는 것을. 내 가정사역의 뿌리를 또 한 번 발견하고 울컥하던 내가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게 된다.

아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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