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0-06-30 15: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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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라파엘로에게 작품을 의뢰한다. 1517, 드디어 완성된 작품이 시칠리아 섬으로 운송된다. 순항을 하던 화물선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바위에 걸려 난파된다. 전원 실종 소식에 아연실색한다. 선적한 컨테이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3미터가 넘는 라파엘로의 작품 <골고다로 향하는 중 쓰러진 그리스도>도 자취를 감춘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얼마 후 파손된 배의 파편들이 제노아 해변으로 떠내려 온다. 잔해를 수거하는 중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라파엘로의 작품이 담긴 박스가 발견된다. 놀랍게도 작품은 멀쩡했다. 수도원의 품에 안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 바람과 파도의 분노마저도 아름다운 걸작에 존경을 표했다.”-미술가열전 라파엘로 편, 조르조 바사리

그랬다. 걸작은 바람과 파도까지 알아본다. 뿐만 아니다. 걸작으로 탄생하기 까지 작품도 사람처럼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는다. 고난과 시련이 있다. 눈물이 있고 웃음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그랬다. 1625년 수도승들은 이 작품의 가치를 몰라보았다. 파손이 심해서 이 작품에 누가 그려져 있는지 조차 몰랐다. 결국 작품의 중앙 하단부를 뚫어 문을 만들어 버렸다. 바로 예수님의 발이 있는 위치다. 복구를 할 수 없어 칠을 했다. 1796, 나폴레옹의 부대가 머물 때는 마구간으로 사용했다. 부하들은 말똥과 진흙을 던져 12제자 얼굴 맞추기 게임을 했었다고 한다.
수난은 계속된다. 1800년과 1966년의 두 번에 걸친 대홍수로 물에 잠긴다. 곰팡이와 이끼로 뒤덮인다. 1943년에는 세계대전으로 수도원이 박살나버린다. 이후 복원사업이 진행된다. 20년에 걸친 길고 긴 작업이었다. 여전히 완벽한 복원은 어렵다. 파손의 정도가 심해서다.
나는 예수님의 발을 볼 수 없는 것이 속상했다. 얼굴이면 되지 무슨 발이냐고? 모르는 소리다. 사람을 보려면 발을 보아야 한다. 발은 그 사람의 이력서다. 발 이(), 다닐 력(), 기록 서(), 그래서 이력서(履歷書)라 한다. 예수님이 발에 입맞춤 하던 여인(7:38)처럼 나도 입맞춤 한 번 해드리고 싶었다. 이런 안타까움을 알아서일까?
구글 기가픽셀’(Gigapixel) 디지털 카메라의 최첨단 기술이 찾아왔다. UK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구글 측 아트 앤 컬처가 기가픽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활용, 원작 이미지 복원 작업에 나섰단다.
모든 그림에는 흔적이 남아있다. 흔적을 나타내는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는 양피지 위에 원래의 글을 지우고 다시 쓴 고대 문서를 말한다. 아무리 지우고 그 위에 덧씌운다고 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게 된다. 내 인생의 흔적도 그렇게 남아있을 터. 기가픽셀은 한 이미지당 약 70억 픽셀(화소)로 이뤄진다. 기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글씨나 그림 속 아주 작은 묘사까지 볼 수 있다.
완벽에 가까운 재생으로 찾아온 기적 앞에 이번에는 무슨 말을 남길 수 있을까?
명작은 결코 죽는 법이 없다.”
그래. 나도 살아내야 한다.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이니...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젯소, 핏치, 매스탁을 바른 벽 위에 템페라 460×880cm 1494~1498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소장
라파엘로 판넬에 유화 이후 캔버스로 옮김, 318×229cm 1514~1516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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