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0-02-20 09: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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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에카〉(창 3:9)
“너는 어디에 있느냐?”란 뜻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첫 질문이다. 배철현(고전문헌학자, 전 서울대)교수는 풀이한다.
“이 간단한 단어로 구성된 히브리어 문장에는 동사가 없다. 이 문장은 ‘너는 지금 있어야 할 곳에 있느냐?’ 혹은 ‘너는 어제 너에게 어울리는 장소에 있었느냐?’ 혹은 ‘너는 내일 네가 가야할 곳을 알고 있느냐?’란 의미다.”

청란교회 앞 작은 광장 앞에 질문석(質問石)이 하나 놓여 있다.
“나는 어디에?”
10년 전, 광장에 미로(迷路 labyrinth)를 꾸몄다. 스페인 서북부 끝 산티아고를 떠올렸다. 연간 20여 만 명이 찾는 순례길이다. 천둥의 아들(히브리명:야고보)로 불리었던 산티아고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순례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 때가 9세기였으니 얼마나 많은 순례객들이 이 길을 걸었을 것인가? 그들은 고독한 이 길을 걸으며 그들은 묻고 또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순례자들의 발길과 질문을 떠올리며 이를 붙였다. <양평의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남부의 국경마을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km의 길은 도보로는 한 달을 걸어야 한다. 청란교회 앞 미로는 30분이면 걸을 수 있다. 어린아이의 발걸음으로 800보쯤 된다. 폭이 한 고랑이다.
방문객들이 묻는다. 왜 이렇게 좁게 만들었냐고?
난 건축가 서현(서울대 )교수의 이야기로 답해준다.
“대웅전의 섬돌은 작다. 신발, 조심조심 벗어야 한다. 허위허위 올라왔던 발걸음이 이때쯤이면 산조(散調)의 진양조 정도로 늦춰져 있다. 청량사 대웅전 올라가는 길에 깔린 맷돌. 조심조심 지르밟고 가라는 뜻이다. 종묘의 월대에 가득한 박석. 아무나 쉽게 올라설 수 없는 공간이고 섣부르게 발걸음을 옮겨서도 아니 되는 공간인 것이다. 종묘가 어떤 곳인가? 죽은 이의 신주를 모신다는 점에서 초월적이다. 그들이 살아서 왕이었다는 점에서 가장 엄숙한 공간이다.”

좁은 길은 바쁜 걸음을 묶기 위한 장치였던 셈이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안단테(andante)의 걸음을 걷다 보면 중심축에 서게 된다. ‘조급함’과 싸워 이긴 이들을 기다리는 고백문이 있다.
Solo Cosi 솔로 코시(only as it is: 오직 이대로)
Solo Questo 솔로 퀘스토(only this: 오직 이것)
Solo Ora 솔로 오라(only now: 오직 지금)
Solo Qui 솔로 퀴(only here: 오직 여기에)

나는 이 고백을 얻기 위해 오늘도 순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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