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1-02-16 15: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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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처럼 검다. 지옥처럼 뜨겁다. 천사처럼 순수하다. 그리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뭘까? 커피다. 프랑스의 외교관 탈레랑(Talleyrand·1754~1838)의 커피예찬이다. 커피는 권태로 늘어진 영혼을 환희로 적신다. 둔한 영혼에 날카로운 각성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커피를 신의 음료라 부르는 이유다.

성경에도 커피가 있을까?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광야로 피신한다. 사울은 현재권력이고 다윗은 미래권력이다. 다윗은 목축업자 나발의 목자들과 재산을 보호해 준다. 오늘날로 하면 경호업이다. 추수 날이 다가온다. 다윗은 열 명의 종들을 보내 식량을 구한다. 도네이션을 요청한 셈이다. 최대한의 저 자세다.

당신의 아들 다윗

참 아픈 단어다. 미래권력이 일개 목축업자에게 납작 엎드린 꼴이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다윗에게는 식솔 600명이 있다. 빈궁하다. 결과는 참담하다.

웃기는 소리 말라! 다윗이 어떤 놈이냐?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다는데 그런 놈이냐

이 한마디가 자존감을 건드린다. 다윗의 ~’하는 성질이 나온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말로 인한 상처가 컸다. 자존감이 무너진다. 완전군장을 한 400명을 데리고 나발의 목장을 찾는다. 묵사발을 내야 한다. 일촉즉발의 순간, 나발의 하인 중 하나가 안주인 아비가일에게 이른다.

주인(나발)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사실을 알아채린 아비가일은 혼비백산이다. 집안이 몰살당할 위기에 놓였다. 다급했다. 서두른다. 다윗을 맞이한다. 이 때 준비해 간 음식물이 있다.

빵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이미 요리하여 놓은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다섯 세아와 건포도 뭉치 백 개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모두 나귀 여러 마리에 싣고.”(삼상 25:18)

본문의 이름을 알 수 없는 볶은 곡식은 뭘까? 이를 커피라고 주장한 이가 있다. 게오르게 파스쿠치우스(George Pascychious). 1700년 대 일이다. 커피가 한참 상종가를 올리고 있을 때다.

끝내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과 건넨 음식물이 다윗의 마음을 흔든다. 훗날 나발은 죽음에 이른다. 과부가 된 아비가일에게 다윗이 청혼하여 부부가 된다.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은 다윗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그 결과 시편의 주옥같은 영성의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나는 종종 아비가일과 다윗이 볶은 곡식을 먹으며 나누었을 대화를 떠올려 보곤 한다.

16세기까지 술에 잠겨있던 유럽을 깨운 것은 커피의 등장이었다. 커피로 내 속에 들끓는 분노를 잠재우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다윗을 분노의 터널로 부터 빠져나오게 한 볶은 곡식이 틀림없다.

오늘은 다윗의 커피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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