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0-02-24 08: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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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졸금졸금 빗소리가 달았다. 빗소리는 모주꾼이 술에 젖어들듯 귀에 가랑가랑 감겨 왔다. 마치 젖강아지에게 물린 발뒤꿈치처럼 ‘간질간질’ 자그러웠다. 초저녁엔 ‘사락사락!’ 색시비가 비단신발 끌듯 조심조심 푸나무에 스며들었다. 둥글둥글 도둑고양이처럼 사뿐사뿐 다가왔다. 옹알옹알 옹알이하듯, 끝도 시작도 없이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산사 암자에서 하룻밤 묵고 난 다음 김화성기자가 쓴 글이다. 한 대목을 더 인용해 본다.
“눈을 감으니 저잣거리의 그리운 소리들이 한꺼번에 물무늬 져 어른거렸다. 속세와 절집이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짤랑짤랑! 외양간 워낭 소리, 푸우! 푸우! 황소의 콧김 소리, 우당탕! 골목길 아이들 발자국 소리, 후루룩 훌훌! 비 오는 날 허겁지겁 짜장면 먹는 소리, 딸그락 짤그락! 둥근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 분주한 수저질 소리, 개골개골 맹꽁맹꽁! 무논 가득한 개구리들 경 읽는 소리. 음메∼! 갓 난 송아지 어미 찾는 소리….”
그는 비로소 ‘소리를 보았다’고 했다. 과연 ‘보이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난 그게 궁금했다. 서현교수는 ‘소리 역시 보이지 않으나 공간을 꾸미는 중요한 요소’라 했다.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도’ 않을 소리의 향연, 어떻게 공간에 담아낼 수 있을까?
마침 행운처럼 나타난 분이 파이프 오르간 제작자인 홍성훈님이었다. 그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전반적 환경은 ‘소리’가 아닌 ‘소란’으로 가득차고 있습니다. 그나마 교회가 그곳으로부터의 안식처가 되어야하지만, 오히려 더 세상적으로 시끄러움을 앞세우고 있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많은, 특히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그 건축물이 갖고자하는 성격이나 예배의 전례는 무시하듯, 온갖 부자연스러운 흡음재와 압도하는 듯한 스피커들로 가득 채워 예배당의 본 모습은 사라지고, 오로지 인위적인 ‘소리지배’를 통해 과시적(?) 형태만 남는 것에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홍 마이스터는 파이프 오르간을 제작하면서 세 가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르겔은 세 가지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예술적 작품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조형적 모습, 바람의 테크닉, 소리의 색깔입니다. 이 작품에 걸 맞는 소리를 구상할 때, 탁음과 저음 그리고 맑은 음의 배합을 생각하였습니다. 저음은 구름 같은 소리를 담아내려고 하였고, 탁음은 흙 내음과 같은 생명의 소리를 담고 싶었습니다. 맑은 소리는 새암의 맑은 물처럼, 은하수의 작은 빛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소리 구성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 친구 김재평교수(소리공학자)와 둘이 합작을 해서 소리를 다듬어냈다. 이곳에선 자주 음악회가 열린다. <티켓 대신 귀를 가지고 오는 음악회>다. 정말로 소리가 물결친다. 소리가 보이는 것이다. 아니 보여서는 안 된다. 소리도 없이 와야 한다. 그래야 영혼을 울린다.
묘하다.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듯 보이는’ 소리. 나는 그것이 공명(共鳴)임을 안다. 엄마 뱃속에서 양수를 통해 울려퍼지던 태고의 소리가 아니던가? 조용히 그 분의 이름을 불러본다. 작고 작은 소리로 찬양의 입술을 연다. 내 소리가 내 심장을 두드린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정기적으로 여는 <마실 음악회>에서 오르간과 해금이 만났다. 그 청아한 소리는 가슴을 찢고 또 찢는다. 해금과 함께 찾아온 디트리 본 회퍼(1906~1945.4.9)가 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주의 선하신 능력에(Von guten mächten)>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고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그 어떤 일에도 희망가득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저 촛불 밝고 따스히 타올라
우리의 어둠 살라 버리고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그 어떤 일에도 희망가득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하이패밀리는 오르간 전공자들의 졸업연주회와 발표회를 위해 오르간을 무상 대여 하고 공간기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내 생애 가장 잘한 기부행위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