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0-02-21 10: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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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틈만 나면 건축 책을 읽는다. 서현교수(서울대, 건축학)의 책들이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두꺼운 건축 책을 들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문장력이었다. 감칠맛 나는 글 솜씨가 매력적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이 대목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바흐의 음악은 건축적이다. 음표 하나하나를 벽돌 쌓듯이 빼곡히 쌓아 올려 만든 위대한 구조물이다. 대칭, 병치, 조바꿈을 화려하게 구사해가며 만들어낸 음악은 음표 하나만 위치를 바꿔도 전체를 다시 조정해야 하는 구조물이다. 건축이 그렇듯이.
음악의 감상은 단순히 멜로디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양하게 동원되는 악기의 음색을 빼놓을 수 없다. 고음에 이른 오보에가 찌르듯이 공간을 파고드는 소리, 저음의 첼로가 활과 현 사이에서 거칠게 긁히며 만드는 소리는 진정한 음악 감상을 이루는 중요한 재료다. 이 맛은 작곡가의 창조적 영감뿐 아니라 연주자의 기량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이 맛의 감상을 위해 수천만 원짜리 오디오 기기가 오늘도 판매되고 그 맛의 음미 결과로 수많은 연주 평이 존재하는 것이다.
건축의 감상에서도 네모나고 동그란 형태의 관찰은 지극히 기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얼어붙은 음악, 즉 건축을 만든 음색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을 이루는 재료가 만드는 독특한 맛과 그 구축 방식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건축을 제대로 음미하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그의 책 제목이 왜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인지를 알았다. 세상에!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니... 이런 지독한 형용모순(oxymoron)이 어디 있는가? 그의 글에는 인문학적 서사가 넘쳐난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건축의 식견이 깊은 통찰로 이끈다. 흥미를 넘어 신세계를 동경하게 만든다. 그 날 이후 나는 건축물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만 보는 만큼 알진 못한다.’는 명제가 살아 꿈틀거렸다.
이 곳 W-스토리를 방문한 이들이 건물을 돌아보며 꼭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누가 설계했지요?’ 질문 속에는 설계자의 이름을 알고 싶어 던지는 질문이 아닌 것을 안다. 당연히 ‘여럿이’ 했다. 난, 오스트리아 건축가인 한스 홀라인이 했던 말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누구나 건축가다. 모든 것이 건축이다.”
건축주(建築主)로 설계자에게 부탁한 게 하나 있었다. “터무니(터의 무늬)있게 설계해 주세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침묵의 계단>이다. ‘오보에의 고음’은 11미터 높이의 공간으로 처리했다. ‘저음의 첼로가 활과 현 사이에서 거칠게 긁히며 만드는 소리’는 거친 벽면으로 채워졌다. 스며드는 빛은 그리스도의 현존(現存)을 상징한다.
들어서는 순간, 바흐를 연주하기에 가장 좋다는 채플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진다. 길고 긴 계단이 파이프 역할을 하면서 소리를 품어낸다. 음색이 신비롭다. 천사들의 목소리가 저럴 것인가? 수 천 만원이 아니라 수억 원짜리 오디오 기기도 흉내 낼 수 없는 소리다.
서현 교수의 말마따나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 한다면 음악은 ‘살아 숨 쉬는 건축’이 될 것인가? 나는 이 둘이 만난 현장에서 언제나 옷깃을 여민다. 한 없이 낮고 낮은 나를 바라본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목소리로 하늘 음성을 듣는다.
“나의 불가해한 신성은 겸손의 심연에 자리한 지극히 낮은 자에게 응답한단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내게 부탁할 필요가 없지. 그저 읖조리기만 하면 된단다. … 높디높은 신성은 깊디깊은 겸손 외에는 아무것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지. 겸손한 사람은 나와 하나란다. 내가 스스로를 다스리시듯이, 겸손한 사람은 나를 다스린다고 할 수 있단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을 무엇이나 한다. 그와 나는 한 몸이다.”
‘나 홀로’ 성소(聖所)에서 나는 오늘도 주님과 하나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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